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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마을 이야기(Ocean)/한중일 크루즈(cruise)

[가고시마] 최고의 뷰 포인트 시로야마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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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중앙공원>

사쿠라지마에서 나오니 하늘이 화창하게 개었다. 그 곳에 있을 때 좀 더 개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이제는 가고시마를 찾는다면 빼놓아서는 안될 시로야마 전망대로 향한다. 시로야마 전망대는 가고시마 시민들에게도 인기있는 휴식공간이라 하니 왠지 기대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



항구에서 시로야마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 가고시마 중앙공원, 가고시마 박물관, 쓰루마루 성터를 지나치게 된다. 가고시마 박물관 앞에는 추운 겨울 끝에 찾아온 따뜻한 봄바람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소풍을 온 듯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다. 나도 그냥 그들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쓰루마루 성터는 말 그대로 성터만 남아있다. 에도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실제로 전쟁에 사용된 적은 없었고, 어이없게도 흰개미의 공격에 여러차례 소실되었다고 한다. 재건에 재건을 거듭했지만 1874년 마지막 소실 이후 그들도 지쳤나보다. 이제 더 이상 재건하지 않고 현재의 모습대로 성터만이 남아있다. 겉에서 보기엔 여느 성들과 달라보이지 않는데 성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천수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터만 남았으니...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전망대를 향해 올라가는데 가고시마의 특산물 고구마를 판매하고 있다. 고구마 굽는 냄새도 난다. 갑자기 고구마가 먹고싶어 진다.



가고시마 시민들에게도 인기있는 곳이라 했는데 어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평일이라서 그런가? 우리 일행말고는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조용하게 산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


동백꽃인가? 떨어진 꽃 한 송이가 내 발목을 잡았다. 떨어진 꽃이 이렇게 아름답게 자기 색을 가지고 있다는게 놀랍다. 방금 떨어졌을 수도 있지만 언제 떨어졌는냐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꽃의 모습에 더 집중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작은 꽃 한송이는 자기가 가진 모든 힘과 에너지를 동원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색을 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조가 물 아래로 무수한 발짓을 하듯 말이다. 사람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죽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그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이가 들어 퇴직을 하고, 지금까지 하던 모든 일을 그만두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떨어진 꽃이라고, 끝난 인생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젊음에 대한 알 수 없는 찬양! 하지만 이젠 그들의 나이와 노화되고 있는 겉모습보다 그 모습을 갖추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겠단 생각이 든다. ㅎㅎ 잠시지만 내가 가진 편견을 알아차리게 한 꽃송이에 좀 더 힘을 내라고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조금씩 개이고 있는 날씨 덕분에 가까이 가고시마 시내부터 저 멀리에 있는 사쿠라지마까지 보인다. 고맙게도 넓은 바다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 역시 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은 내게 알 수 없는 쾌감을 준다.


그녀는 무엇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곳에 올라와서 느낀 것? 좋았던 것? 살짝 부러워진다. 요즘들어 심각하게 빠져있는 귀차니즘 때문에 내게서 저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필요성은 절실하게 느끼지만 펜을 들고 움직이는 것조차도 귀찮게 느껴진다. 물론 돌아서면 후회막급이면서도 말이다. 늘상 노트를 챙겨가면서도 실상 빈 장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왜 내겐 저런 여유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뒤돌아 선다. 그리고 얼마나 지켜질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사쿠라지마에 걸쳐있는 것이 구름인지, 화산이 폭발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튼 너무 좋다. 사쿠라지마로 가는 배도 보이고, 가고시마로 들어오는 배도 보이고... '나도 거기 갔다왔는데...'하고 괜히 소리도 한번 쳐보고 싶다. 자랑하고 싶다.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

사이고 다카모리는 일본의 정치가이면서 메이지 유신에 큰 공을 세운 사람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대단히 존경받는 사람이지만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리 넉넉한 마음으로 볼 수 없는 인물이다. 도쿠가와 막부를 종식시키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왕정을 복고하는데 성공했지만 조선과의 관계에서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면서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당시 메이지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조선의 모습에 모욕감을 느끼고(조선에서는 일본의 사절단을 3번이나 물리쳤다)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사이고는 조선을 방문하여 의도적으로 예의없는 행동을 하여 조선과 관계를 악화시킨 후 전쟁으로 조선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 찬반 논란을 일으키며 결국엔 사이고가 사퇴까지 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가고시마로 돌아와 학교를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면서 재기를 꿈꾸었는데 정부와 대립이 격해지면서 자국 내에서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정부군을 상대로 하는 전쟁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패하여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고, 시로야마에 동굴을 만들어 숨어있다가 결국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정치가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에서 영웅대접을 받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반란군인데 어떻게 이렇게 영웅대접을 받게 되었는지는 내게 미스테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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