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노섬에서 5분 거리에는 베네치아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이곳이 없었다면 베네치아는 한줌의 신기루로 사라질뻔한 아주 귀한 곳이지만 지금은 너무나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지난 세월의 아픔을 모두 감내하고 세상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노신사처럼 조용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토르첼로는 베네치아의 많은 섬들 가운데 사람들이 정착한 첫번째 섬이다. 흙만 존재했던 이곳에 바닥을 고르고 기둥을 세워 삶의 터전을 만들었고, 번성한 도시가 되어 사람들로 가득찼다. 건축물과 조각, 모자이크와 같은 예술품들을 만들어 그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비록 지금의 모습으로는 그저 짧은 한순간 관심을 받았다가 고개를 숙인듯 하지만 의외로 이곳은 여러 세기에 걸쳐 명성을 떨쳤던 곳이다. 한창때는 2만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을 했었다고 하니 그냥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 옛날 베네치아가 시작된 곳이고, 지금은 베네치아의 흔적이 남은 있는 그대로의 박물관이 되었다.
베네치아의 생명줄과 같은 수로가 토르첼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바포레토 정거장에서 성당이 있는 중심지까지 이르는 길 옆을 따라 흐르는 수로가 전부이다. 그 흔한 운하가 석호때문인지 제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말라리아까지 발생해 토르첼로는 거의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한 순간에 과거의 도시로 전락해 버렸다.
사람이 사는데 물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보여준다. 수로의 조건이 악화되기가 무섭게 토르첼로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흔적만이 남은 도시가 되어 가늘어진 생명줄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시간을 이어가는 것 같다.
토르첼로가 무너져가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아름답게 보인다. 이렇게나마 남아있어준다는게 고마울 정도로 존재 자체가 감사하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여행지일 뿐임에도 그런 뭉클함으로 다가온다. 애잔함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이크~ 이 친구들은... 저 멀리서 볼 때는 다리 위의 조형물인줄 알았다. 가까이로 다가갈 수록 움직임이 느껴지고 이내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알았다. '아~ 대단하다. 저 둘은 무지하게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살짝 웃으며 옆을 지나왔다. 그리고 토르첼로를 30분이 넘게 둘러보았다. 돌아나오는 길에도 그들은 좀 전의 그 모습과 전혀 다를바 없는 모습이다. 똑같은 모습을 바라보는데도 다른 생각이 든다. '저들이 정말 사랑해서일까, 아님 단순한 쇼맨쉽일까.' 지나가는 독일인 아저씨 한분이 버럭 소리치신다. "호텔로 가!" ㅎㅎㅎ 거기 있던 사람들, 한바탕 웃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로를 따라 걸어들어오면 정면으로 보이는 산타포스카 성당이다. 11세기경 세워진 교회로 주랑과 아치를 떠받들고 있는 기둥이 볼만하다. 생각보다 큰 규모가 토르첼로가 얼마나 번성했던 곳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뒤쪽으로는 토르첼로 대성당(토르첼로 산타마리아 델 아순타 성당)인 것 같다. 솔직히 같은 건물에 성전이 여러개가 있으니 구분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제일 눈에 띄었던 곳인데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함에 가슴을 친다. 한 쪽에 설명이 있었으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이다.
적색의 기와지붕(?)과 벽돌이 우아함을 더해 준다. 빛바랜듯 하면서도 그 색을 잃지 않음이 굳은 지조를 보여주는 것 같다.
토르첼로에 남은 베네치아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성당 2곳과 박물관 정도가 모두이다. 뒤쪽으로 보이는 곳은 유서깊은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델라스투라이 박물관이고, 돌로 만든 의자는 아틸라의 왕좌로 5세기 훈족의 왕이 대관식을 할 때 사용한 의자라고 한다. 왕좌에 앉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과거의 영광을 보노라니 참으로 서글프구나.
토르첼로는 부라노에서 5분 밖에 걸리지 않는 섬이지만 오가는 배의 간격이 길고(25분), 다른 섬들에 비해 수상버스가 빨리 끊겨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토르첼로를 찾았을 때에는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다음 돌아가는 버스가 언제 있는지, 마지막 버스 시간은 언제인지 필히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엔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도 전무해 보였기 때문에 반드시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런 불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르첼로는 반드시 들러야 할 베네치아의 중요한 포인트로 강조하고 싶다.
다음은 계획상 리도로 향해야 했지만...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배에 갇혀 한참을 보낸 후 부라노-무라노-베네치아 본섬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음에 감사를 할만큼 엄청난 파도와 비바람이 몰아쳤다. 하지만 우습게도 자유의 다리를 건너는 순간에는 해가 삐죽히 얼굴을 보인다. 웅~ 나보다 더 변덕스러운 날씨!
'서쪽 마을 이야기(Europe) > 이탈리아(Ita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Venezia] 베네치아의 추억은 곤돌라에서 시작된다. (14) | 2010.11.06 |
---|---|
[Venezia]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빠지다. (8) | 2010.11.02 |
[Venezia] 부라노섬에서의 분위기 있는 식사 (4) | 2010.10.28 |
[Venezia] 색색이 아름다운 무지개섬, 부라노 (2) | 2010.10.26 |
[Venezia] 섬과 섬을 연결하여 만든 섬(무라노) (4) | 2010.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