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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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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먹자골목-데지마 와프 우리나라로 보자면 일종의 먹자골목 정도 되는 것 같다. 먹자해변! ^^ 여행책자에서는 꽤나 잘 개발된 관광코스로 설명을 해두었지만 그것만 보고 이곳을 찾았을 때는 실망이 엄청날 것이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곳이지만 이 곳이 데지마 와프인지도 모르고 식사를 했었고, 저녁에 맥주한잔 하려고 책자에서 찍어 찾은 곳이 이 곳이었다. 물론 점심을 먹은 곳이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운 가이드~ 한 마디만 해줬어도.... 그래도 데지마 와프에서 한 가지 건질 것이 있다면 나가사키 항과 인접해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밤에는 더욱 아름답고... 외선들로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듯이 밝게 빛나고 있다. 물론 낮에 찾았던 곳이 너무나 기억에 남고 좋아서 찾은 것은 절대 아..
[나가사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성당-오우라성당 오우라성당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성당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정식명칭이 26성인 순교자 성당이다. 이 곳이 처음 생겼을 때 나가사키 주민들은 이 곳을 '프랑스절'이라 불렀단다. 물론 지금있는 건물은 원폭투하후 무너진 성당건물을 재건한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가 높아 일본의 보물로 보호받고 있다. 이 곳은 프랑스 신부님이 만들었는데 그 신부님이 우라카미의 숨어있는 기리시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본에 기리시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가사키로와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성당을 지어놓으면 숨어있는 기리시탄들이 하나 둘 찾아오리라 생각했는데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님은 기리시탄을 찾기 위해 나가사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성가를 부르기도 하고 신부라는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썼으..
[나가사키] 이웃을 향한 사랑이 담긴 곳-여기당 나가이 다카시는 자신이 쓴 [묵주알]로 나가사키 타임즈 문학상을 타고 그 상금으로 우라카미 언덕에 벚꽃 1,000그루를 사서 심는다. 정작 자신은 병이 들어 복수가 차고, 죽음을 앞두고 있었으면서... 그가 벚꽃나무를 심은 이유는 앞으로 이 곳에서 살아갈 아이들이 전쟁의 참상을 보지 않고 언덕에 꽃이 피듯이 희망을 피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라카미 성당, 학교, 병원 주변에는 아직 그가 심은 벚꽃나무가 건재하다. 봄마다 하얗게 피어나는 벚꽃은 보는 이로하여금 너무나 기분좋게 만든다. 나가이 다카시가 심은 나무는 나가사키 시민들에게 무엇보다 큰 희망과 힘이 될 수 있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라카미성당에서 걸어서 5분정도 가면 여기당과 나가이다카시 기념관이 나온다.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되..
[나가사키] 우라카미 성당의 재건 우라카미 성당의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우라카미 지구는 완전히 가톨릭지구라고 한다. 일본의 많지 않은 가톨릭 신자수에 가톨릭 지구라고 말한다는게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오랜 세월 박해에 더욱 탄탄해진 신앙아래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한 성모상같지만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성모상이다. 이탈리아 의사회에서 교황님의 축복을 받아 나가이 다카시에게 보낸 성모상인데 슬프게도 나가이 다카시는 그 성모상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사망 후 한달쯤 지나서 도착했다. 성모상이 세워진 자리는 나가이 다카시가 성모상을 기다리며 지정해놓은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성당을 찾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는 곳이 되었다. 바로 이 성모상이다. 원자폭탄을 맞고 부서진 석상과 그 조각들을 그대로 전시..
[나가사키] 결코 잊어서는 안될 역사 - 나가사키 원폭투하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At 11:02 a.m. on August 9, 1945, an atomic bomb was dropped over the city of Nagasaki.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일본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역사로 기억되겠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기억의 형태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몇 몇의 사람들은 아직까지 원자폭탄에 대한 기억을 일본의 만행에 대한 하늘의 처벌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생각하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픈 인류의 역사이다. 원폭투하 후 희생된 학생들과 선생님을 기억하기 위해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이다. 원폭투하시 2,000여명의 학생과 선생님이 희생되었다..
[나가사키] 니시사카 성당과 26성인 기념관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니시사카 성당으로 이 곳은 26성인 기념상과 함께 있다. 니시사카 공원은 일본에서 최초로 가톨릭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로 그들이 처형된 니시사카 언덕에 성당과 함께 마련되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로 바오로 미키를 비롯한 17명의 순교자가 이 곳에서 십자가형을 당했고 현재 이들은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로 순교한 26명의 성인을 기념하는 상으로 그 중엔 미키 바오로도 있고, 어린 아이도 3명이나 있다. 최초로 가톨릭 신자들이 순교한 곳인데 이 곳을 선정한 이유는 외국의 선박들이 드나드는 나가사키 항구가 바로 보여 그리스도를 전할 경우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잔인한 인간들... 그 이후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나가사키] 성모의 기사회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니 차에 올라타고는 완전히 우두두둑~~ 비가 내린다. 결코 무난한 일정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챘어야 했다. 여기서 5분도 안걸린다. 거리는 가깝지만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에서 왼쪽으로 콜베 신부님을 기념한 자그마한 경당이 있다. 콜베 신부님께서 [원죄 없으신 성모기사회]를 창설한 후 포교활동을 하기 위해 1930년 제노 수사님과 함께 나가사키를 찾아 오무라 성당 근처에서 생활하면서 신학생 교육을 하였다. 그리고 일본에 도착한지 한 달 만에 일본어로 된 [성모의 기사]를 출판하기도 했다. 신부님은 6년동안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폴란드로 돌아가 아우슈비츠에서 47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신부님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다른 성당들에..
[일본 시마바라] 코와키엔 호텔 1급 온천호텔로 운젠화산이 폭발했을 때 일본 천황이 머물며 피해복구 상황을 둘러보았던 곳으로 유명하단다. 혹시나하고 가져간 여행책자에도 소개된 호텔이었다. 호텔 로비에 천황이 왔다갔다는 기념싸인(?)도 있었다. 작지만 수영장도 있고(비록 이용해보진 못했지만), 노천탕이 마련되어 있다. 노천탕은 바다를 향해 나 있어 바다풍경을 보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고 (간혹 배가 들어온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금새 극복할 수 있었다-완전무시), 작은 냉탕은 시마바라에서 자랑하는 철분 온천수도 있다. 쇠냄새를 맡는게 조금은 거북한 감이 있었지만 물의 질은 좋았던 것 같다. 동행한 일행 중 아토피가 아주 심한 친구가 있었는데 2번의 온천욕으로 몸이 말끔해졌으니 말이다. 여기서 묵을 때만해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나..
[시마바라] 시마바라 성당 이 곳에서 첫째날을 마무리하며 미사를 드렸다. 정해진 미사시간이 촉박하여 들어가면서 '전체 전경사진은 나오면서 찍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미사를 드리고 나오니 컴컴한 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위의 두번째 전경사진은 [축복 속으로(blog.daum.net/inbene)]에서 퍼왔어요. ^^ 성당 앞마당에 우리 나라 성당에서처럼 성모상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성당들은 입구에 성모상이 있는데 내가 갔었던 유럽에서는 그런 성당을 보지 못했다(대개 유럽의 성당은 길 앞에 그냥 바로 성당이 있었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데... 이유가 있을까? 하기야 중국 청도에 있는 성당도 그랬던 것 같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 왜 다르지? 모르겠네. 시마바라는 우리 나라로 치면 민중봉기 정도로 볼 수 있는 [시마바..
[후쿠오카] 일본과의 첫 대면 - 하카타 항 부산국제항을 떠나 후쿠오카의 하카타항으로 향하다.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일정이었지만 일본에 대한 무의식적 인식의 영향일까 그다지 설레임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나가이 다카시와 엔도 슈사쿠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좀 가지고 있었지만. 집단무의식이란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이드가 후쿠오카에 도착해 버스로 이동하면서 단순히 우리가 가진 일본에 대한 인식,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들을 보고 인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나에게 4일의 시간은 오랜 시간동안 박혀있던 편견을 버리기엔 짧은 시간이었던 듯 하다. 물론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먼 나라이지만 정말 가까운 나라였다. 대구에서 서울까지보다도 훨씬 가까운... 후쿠오카 야후돔 지나가다 뭔가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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