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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마을 이야기(Europe)/이탈리아(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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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nze] 예술을 통해 피렌체 정치를 보다(시뇨리아 광장). 시뇨리아 광장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 피렌체의 중심지로 그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시뇨리아 광장은 정치와 상업, 예술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이다. '시뇨리아(행정장관의 모임)'라는 이름이 의미하듯이 과거 정치인들은 이곳에 모여 정사를 토론하였고, 높이 솟아있는 베키오 궁전의 종탑에서 종이 울리면 시민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지금은 종이 울리지 않지만 이른 시간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여행을 시작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두오모와 세례당 사이로 난 칼차이우올리 거리를 따라 걸어나오면 피렌체 역사를 집대성 해 놓은 시뇨리아 광장이 나온다. 골목의 끝에서 만나는 광장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하여 언제나 시원함과 후련함을 함께 가지게 한다. 피렌체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시뇨리아 광장에 들어서니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기..
[Firenze] 로지아 델 비갈로 & 단테의 집 두오모 가까운 곳에 오래되었지만 화려한 건물이 하나 있다. 입구 아치 장식의 섬세한 조각이라던가 건물벽의 흐릿하게 남아있는 벽화를 보면 분명 교회부속 건물이거나 관공서에서 사용했을 것 같은 건물인데 1300년대(1358년)에 고아원으로 사용된 건물이란다. 내가 버린 아이지만 교회의 자선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딱 두오모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많은 아이들이 버려졌는데 부모가 찾아가는 아이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 가기도 했고, 그것도 여의치 못할 경우엔 이곳에서 생활했었나 보다. 피렌체가 낳은 또 한명의 위인, 단테 생가다. 몰락한 귀족의 자제로 태어나 대부업과 임대업을 한 아버지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10대 후반에 부모가 모..
[Firenze] 이 문을 넘어서면 천국이...(피렌체 세례당 천국의 문) 두오모의 맞은편에 서 있는 8각형의 산 죠반니 세례당이다. 이곳은 4세기에 만들어져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손꼽히지만 그보다 오히려 로렌초 기베르티가 만든 청동문으로 더욱 유명하다. 피렌체가 페스트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401년 공모전을 했고, 기베르티,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등 유명한 사람들이 이 공모전에 참가했다. 앞서 두오모의 돔을 얹은 브루넬레스키가 여기에서 기베르티에게 맘이 좀 상했다고... 총 3개의 청동문 가운데 동쪽문은 기베르티가 만든 것인데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극찬하여 천국의 문이라는 일종의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얇은 동판을 이용하여 만들어내어 더욱 놀랍게 한다. 위에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기베르티라고..
[Firenze] 이탈리아 두오모의 대명사가 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 '피렌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누가 뭐라해도 흰백색의 벽 위에 '주케토(주교님들이 쓰는 붉은색 모자)'와 비슷하게 생긴 돔이 얹어져 있는 '꽃의 성모 마리아(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성당이다. 피렌체는 미켈란젤로도 떠오르게 하고, 메디치 가문도 그렇고, 베끼오 다리, 다비드상... 너무나 많은 볼거리와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지만 두오모 앞에선 모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피렌체에 오기 전부터, 오면서 오로지 나의 관심사는 '베끼오 다리'였다. 그래서 큰 관심이 없었던 두오모 앞에서 나도 결국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본의 아니게 제일 먼저 쫓아가게 된 곳이 두오모이다. 산타 마리아 누벨라역에서 내려 5분 거리에 있는 민박집(이 민박집은 정말 거리가 가깝다는 것 외에는 하나도 줄게 없는 민..
[Firenze] 피렌체, 너를 향해 달려간다. 3시간... 180분이 단지 3분의 시간으로도, 무려 3일의 시간으로도 느껴질 수 있는 그 시간, 기차의 속도만큼 쏜살같이 달려 피렌체의 메디치 시대 속으로 빠져든다. 피렌체에 오거든 꼭 사랑을 노래하세요. 꽃의 아름다움을 앞세우고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세요. 만약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당신을 알아줄 거예요. 이 밤을 당신에게 선물합니다. 내가 본 피렌체의 부드러운 인상을 당신과 함께 나누렵니다.
[Venezia] 베네치아 최대의 관광 포인트 빅3(산 마르코대성당, 산마르코광장, 두칼레궁전) 유럽의 많은 성당들이 화려함과 거대함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유럽의 성당에 익숙해진 사람이라해도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다. 크고 화려하면서도 다른 곳에선 찾을 수 없는 부드러움과 강함이 함께 느껴지는 곳이다. 유럽에서 동양으로 향하기 위해선 꼭 거쳐야했던 곳이 베네치아라고 하니 이곳에 동양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적절한 조화를 통해 그들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승화시킨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9세기에 지어져 성경의 저자인 성 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되었던 첫번째 성당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두번째로 재건했으나 베네치아의 위상과 맞지 않다고하여 헐어버렸다고 한다. 현재 성당은 1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많은 보수를 거듭하면..
[Venezia] 아침을 여는 수산시장 여행을 하면서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장이 아닐까. 대개 흥미로운 시장들은 오전에 잠시 열리는 경우가 많아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제대로 보기가 힘들다. 다행히 운이 좋았던 탓에 오전 나절에만 여는 수산시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내가 찾은 시간을 보면 거의 파장 직전에 드른게 분명하다. 베네치아에서 싸고 신선한 생선을 사려한다면 두말할 필요없이 이곳으로 향하면 된다.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똑같은데 시장의 분위기는 가는 곳마다 다른걸보면 오가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큰가보다. 여기에서 파는 것들, 우리 동네시장에도 다 있는데 이상하게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 간간히 흥정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래, 시장은 흥정이 있어야 맛이지. 눈살을 찌푸릴만큼 과하지 않다면 ..
[Venezia] 베네치아의 추억은 곤돌라에서 시작된다. 베네치아 물길을 가르는 곤돌라. 아드리아해를 갈라 내마음으로 들어와 버렸다. 곤돌라와 함께 그 곳에 두고 온 한 쪽 마음을 언제 찾을 수 있으려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는 네 바퀴를 가진 자동차가 없지만 좁은 골목길 어디든 갈 수 있는 곤돌라가 있다. 인간의 두 다리를 넘어선 자동차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다. 아~ 이 작은 쾌감은 뭐지? ^^ 부드럽게 미끄러져 가는 작은배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곤돌라는 원래 귀족들이 타고다니던 배였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본 따 'gondola(흔들리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어서일까. 베네치아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것이 곤돌라인 것 같다. 곤돌라 승강장 뿐만 아니라 작은 섬들을 잇는 ..
[Venezia]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빠지다. 베네치아... 베니스...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화려한 꿈을 꾼다. 이곳을 본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상관없다. 이름 하나로 꿈이 되고, 추억이 되는 지구상에서 흔치 않은 곳이다. 유일한 세계, 베네치아로 들어간다. 저 많은 배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한때 대한민국이라는 동네를 시끌하게 했던 '대운하'. 그렇게 듣던 대운하와 내 눈으로 보는 대운하는 180도 다른 느낌이다. 베네치아의 대운하는 살아숨쉬며 팔딱팔딱 거리는 한마리 생선처럼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겠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 하지만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곳. 그렇기에 더 아련한 곳...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작은 수로. 사실 베네치아가 지금까지 유지..
[Venezia]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토르첼로 부라노섬에서 5분 거리에는 베네치아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이곳이 없었다면 베네치아는 한줌의 신기루로 사라질뻔한 아주 귀한 곳이지만 지금은 너무나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지난 세월의 아픔을 모두 감내하고 세상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노신사처럼 조용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토르첼로는 베네치아의 많은 섬들 가운데 사람들이 정착한 첫번째 섬이다. 흙만 존재했던 이곳에 바닥을 고르고 기둥을 세워 삶의 터전을 만들었고, 번성한 도시가 되어 사람들로 가득찼다. 건축물과 조각, 모자이크와 같은 예술품들을 만들어 그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비록 지금의 모습으로는 그저 짧은 한순간 관심을 받았다가 고개를 숙인듯 하지만 의외로 이곳은 여러 세기에 걸쳐 명성을 떨쳤던 곳이다. 한창때는 2만명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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