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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부산(Pusan)

범어사 뜨락에서 보물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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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웅전 앞이다. 보물 제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법당으로 그 위엄이 다른 불당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 폭의 융단을 깔아놓은듯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은 꽃길로 이어져 있다.


찬 겨울이라 그런가, 아님 번뇌를 끊은 사람 만이 석가모니를 영접할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일까. 굳게 닫힌 문이 다가가서는 안될 그런 곳으로 느껴지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오가는 그 틈새로 살짝 바라볼 밖엔...


이번엔 관음전(관음전 내 관음도는 유형문화재 53호)이다. 자비와 사랑을 가득 안고 중생을 품어준다는 관세음보살은 불교신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보살이기도 하단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범어사 관음전은 금정산의 정기를 한껏 보유하고 있는 곳이라 간절한 마음으로 비는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 있어 1년 365일 소원을 비는 불자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불당이라 그런지 관음전 앞에는 비닐하우스로 절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두었고, 그 곳에서도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있었다.

불교신자가 아니라 법당 안으로 들어가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관음전 뒤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모습으로 대신할 수 있어 다행이다. 보관에 아미타불이 새겨진 것이 분명 관음보살이다.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해탈할 때까지 자신의 열반을 뒤로 미룬 관음보살은 언제쯤 부처가 될 수 있을까.


대웅전 왼편에는 죽은 이들을 구제한다는 지장전이 있다. 고통받고 억압받는 영혼을 구제하겠다한 보살인 지장보살이 중앙에 있고, 옆으로 지옥의 10대왕이 배열되어 있다. 그 10대왕 중 한명이 염라대왕이다. 죽은 뒤 올리는 49제의 의미를 이곳에서 알았다. 일주일(7일)에 1번, 총7번 삶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되는데 마지막 7번째(49일째)날에 염라대왕에게 최종심판을 받게 된다. 최종심판을 받고 나면 되돌릴 수 없으니 이승에 남은 사람들이 죽은 이를 대신하여 공을 쌓는데 그것이 49제이다.



처마 끝에 그려진 지장보살. 왼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주보를 들고 있다. 실제로 간절한 기도로 자신의 사악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해냈다고 전해진단다.


지장전에는 이상하게 들어가서 절을 하진 않고, 입구에서 절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문틈사이로 본 염라대왕은 머리에 책을 이고 있었다.



바위에 새겨진 한시(박내정)와 그 아래 있는 스님들? 오른쪽 끝에 있는 스님은 선글라스를 끼셨나?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석등들도 통일신라에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다음은... 하나의 건물에 3개의 법당이 붙어 있는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다. 범어사 입구 안내소에서 대웅전만 보지 말고 꼭 이곳도 봐야한다고 강조했던 그곳이다. 그냥 멀리서 보면 별다를 바없는 법당일 뿐이지만 가까이에 다가가면 다른 곳에선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 곳곳에 녹아있다.
1613년에는 단독건물로 지어졌다가 1902년에 와서 서로 이어지게 되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나한전.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세 곳 모두 처마와 지붕, 빗살문의 무늬가 화려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중앙에는 석가모니, 양쪽으로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있다.



세 법당 중에서 가장 나중에 지어졌지만 중앙에 자리하며 아름다음을 뽐내는 독성전.1905년에 증건.
온통 꽃으로 장식된 독성전의 아름다움은 문의 무늬에서 만개했다. 빨강, 파랑, 노랑... 자그마한 꽃이 활짝 웃고 있다.


언뜻 무지개 터널처럼 보이는 입구를 자세히 보면 두명의 남녀가 떠받들고 있다. 자신의 몸보다 몇 십배는 되어보이는 판을 들고도 표정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그 경지를 넘어선 것일까.


마지막 법당인 팔상전. 이 또한 1705년에 지어져 1905년에 증건된 곳인데 그 안에는 부처님의 일생을 8부분으로 나눠 그린 그림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가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장면, 설법하는 장면 등 그 의미를 알고 보면 훨씬 더 흥미로운 그림들이다.


범어사의 매력을 그대로 담고 있는 건물이다.
사실 사찰이든 교회이든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는 곳들은 단순히 관찰자의 시각으로 둘러보기엔 마음 한 구석에 호기심과 미안함이 뒤섞인 묘한 느낌이 꿈틀거린다.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없는 행동 하나가 누를 끼칠 것 같기도 하면서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함께하다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스스로도 난감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범어사의 법당들을 보면서도 다르지 않았다.


너른 마당을 왔다갔다하는 것만으로도 내 업보가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 이곳 범어사이다.


그렇지만 경건함 만이 있는건 아니었다. 인간이 사는 세상만사에는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으면 쾌락도 있으니 말이다. 익살스러운 부처님들의 표정에 나도 함께 웃는다.




산사를 돌아나오는 길, 꽃망울인지, 열매인지 알 수 없는 생명이 가득하다. 나는 이곳에서 봄의 향기를 맡았으니 곧 봄이 오리라 믿어볼란다.


ㅎㅎ 염원을 담은 기와불사가 정말로 얹어져 있다.
입구에 있는 성보박물관에 들러 불교 유물들을 둘러보고 나왔다. 천왕문에 있었다던 사천왕의 모습도 보고 불화와 경전 등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놀라운 사실하나! 이곳에 바로 삼국유사 중 하나가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금은 '외출중'이라 만날 수 없었지만 집이 이곳임을 알았으니 담번엔 만나볼 수 있겠지. 국내 5군데에 보관되어 있는 삼국유사 중 범어사의 삼국유사가 현존하는 가장 오랜된 것이라 한다.


바위에 새겨진 글귀들을 내려놓고 산 아래로 내려간다.


선찰대본산 범어사(부산 금정구 청룡동)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 중 하나인 범어사는 신라시대 문무왕 시절 의상대사에 의해 설립된 사찰이다.
10만 병사를 이끌고 신라를 침략한 왜인들로 걱정에 휩싸인 문무왕의 꿈에 누군가 나타나 왜적을 물리칠 수 있는 방안을 알려주었단다. 그 방법은 의상대사와 함께 금샘(황금우물과 금빛 물고기가 노닐었던 곳)이 있는 금정산에서 칠일동안 밤낮으로 기도하는 것. 당장에 의상대사를 찾아 금샘으로 향했고,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감동하여 왜적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상대사를 통해 창건한 절이 바로 호국사찰인 범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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