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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야기(Korea)/부산(Pusan)

의상대사가 창건한 영남의 3대 대사찰, 범어사의 창대한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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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던가.
조선시대 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광화문을 지나 홍례문을 거치고, 다시 금천교를 넘어 근정문에 들어서야지만 왕이 있는 근정전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신사에서도 도리이를 넘어서고 오초즈를 행해야지만 신이 있다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법당 역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 보다. 길게 뻗은 길을 걸어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보제루를 넘어야 비로소 범어사의 대웅전이 나온다.


<범어사 당간지주>

세속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구분짓는다는 다리를 이미 건너왔음에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서인지 '이곳은 부처의 세계입니다'라고 알려주는 나름의 이정표가 곳곳에서 보인다. 줄지어 서 있는 비석들이 그렇고, 하늘을 가득히 메우고 있는 소나무숲이 그렇다. 특히 범어사 당간지주는 시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만큼 그 의의를 지니고 있다. 본래는 '당간'이라고 불려왔지만 지금은 당간은 남아있지 않고 당간을 받쳐주는 지주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당간지주라는 말이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 범어사의 당간지주는 고려말에서 조선 초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 지금으로 본다면 일종의 깃대로 보면 되겠다.
그러고 보니 부석사 입구에서도 본 기억이 나는 듯 하다.


우리도 '여행'이 생활 속 깊이 들어오게 되면서 문화해설사나 관광해설사와 같은 여행도우미들이 활성화되고 있다. 내가 찾은 여행지를 더 깊이 볼 수 있도록 돕는 여행친구를 입구에서 마련했다. 진정으로, 참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더욱이 무료로 대여해준다.



기와불사.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경을 초월한다. 때론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때론 짙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그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모두 이유는 다르겠지만 좋은 마음으로 써놓은 글귀라 스쳐가는 이의 마음도 주름이 펴진다.

<범어사 전경: 이미지 출처 범어사 홈페이지(http://www.beomeosa.co.kr/beomeosa/vr.php)>


 




조계문이라 하기도 하고 일주문이라 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범어사 순례의 첫 관문으로 세속의 때를 벗어버리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지닌 문이다. 우리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일주문으로 이 또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진흙 웅덩이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깨끗함을 본받으라고 일주문의 처마에는 연꽃이 가득하다.

 

<일주문의 뒷태>

일주문은 일자로 배치된 기둥 위에 생각보다 나즈막한 지붕을 이고 있다. 거대함으로 압도하기 보다는 좀 더 낮은 마음으로 굽혀 부처의 세상으로 들어오라는 뜻일 듯 하여 한번 더 마음을 내려 놓는다.


일주문을 넘어서니 두번째 관문인 천왕문이 기다리고 있다. 한층 더 높아진 계단 위에 있는 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이곳에 있던 사천왕(동서남북을 다스리는 왕)은 현재 성보박물관에서 고이 모시고 있다. 아쉽게도 천왕문은 넘어설 수 없었다.


3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범어사의 두번째 관문이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2008년 숭례문 화재가 기억에서 채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또 한 사람의 과오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가 불덩이 속에서 사라져버렸다(2010년 12월 15일 방화로 전소, 현재 복원 중).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문화재 방화사건이 지금도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이렇게 우리는 같은 잘못은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 짧지 않은 길을 걸어오며 다스렸던 마음이 다시 흐트러져버렸다.


멋들어지게 하늘을 향하고 있는 소나무를 보며 다시금 마음정리.


재건 중인 천왕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우회해서 가는 길.
이 때문에 범어사의 세번째 문인 불이문도, 십우도가 그려져있다는 보제루도 그냥 지나쳐야 했다. 아니, 보지도 못하고 와야 했다.




절개를 품은 대나무 덕분인지, 부처님의 깊은 마음 덕분인지 이내 가라앉는 마음...
범어사는 저절로 마음을 정화해주는 치유의 능력을 지녔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 중턱을 넘어섰을 때 2층의 종류가 나왔다. 억겁의 시간을 무던히 지나왔듯 '오늘도 무사히'라는 듯이 큰숨을 내쉬는 종루엔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봐왔던 형형색색의 무늬들 보다 더 인상깊다.


숙종 25년에 중건하여 범어사의 대소사를 알려주었던 범종과 법고는 지금도 산사를 울리는 듯 하다.
가슴 깊숙이에서부터 울어대는 소리는 조금 더 맑은 마음을 가지라고, 숙연한 마음을 가지라고 노래한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지키고 있는 전각이니 불길에 시달릴 일은 없겠지. 하늘을 찌르는 용의 콧수염의 익살스러움이 문득 웃음을 자아낸다.


범어사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두손을 모으고 탑 주위를 도는 저 분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길을 걸으셨을까. 찰칵이는 셔터소리마저 죄송한 마음이 들게 한다. 일제시대에 변형된 모습을 2009년 부터 1여년에 걸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이제 대웅전이 있는 범어사의 최고 공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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