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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고즈넉하다'는 말로도 충분하지 못한 이 분위기를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생동감 있으면서도 고요하고, 한적하면서도 가득차 있으며, 아늑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분위기를 가진 곳, 바로 부산시에 있는 범어사의 모습이다.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듯 입구부터 문화재의 향기가 솔솔 풍겨나온다.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라 모든 것이 멈춘줄로만 알았는데 두꺼운 껍질 안으로 생명을 간직하고 있음을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본격적인 범어사 순례 전 거쳐야 할 곳이 있다.
범어사를 따라 굽이쳐 흘러내리는 계곡 한 편에 무리지어 자라고 있는 등나무군락지가 바로 그 곳이다. 넓게 퍼져있는 군락지는 산사를 순례하기 전 몸과 마음을 정비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몇 일동안 차가웠다가 풀린 날씨 덕분인지 얼음기둥 사이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차가워도 한겨울 향기와는 다른 것이 조금씩 조금씩 봄이 오고 있나보다.
요녀석도 봄이 되길 기다리기가 못내 힘들었나 보다. 나처럼 이렇게 뛰쳐나와버렸다. 떨리는 몸에도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인지 마음이 풀리는 듯 하다.
시작이 어딘지 알 수도 없는 등나무들은 굵은 나무줄기를 기둥삼아 얼기설기 하늘로 향하고 있다. 본래 등나무는 그 습상상 군락을 이루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독특하게도 등나무들이 줄기를 맞대고 살아가고 있다.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그 모습이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지켜지고 있다.
등나무는 자기네들끼리는 모이지 못해도 사람들을 모이게하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공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등나무가 있었다. 그땐 머리를 따아올리듯 꼬여있는 줄기가 그리도 신기해보였는데 넓은 공간에 마구 꼬여있는 그들을 보니 새롭구나.
등나무군락지 관찰로를 따라 산책하다보면 4곳의 쉼터가 나온다. 거닐다 쉬고, 쉬다 거닐며 생각의 템포도 조절할 수 있게끔 배려해 놓았다.
이름마저 선(禪), 심(心), 미(美), 휴(休)이다. 길을 걸으며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자아를 성찰하여 더욱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 길 위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길을 따라 걷는 맛이 제법이다.
넓게 우거진 군락지를 지나치면 큰 키를 자랑하는 편백나무, 소나무, 팽나무 등이 가득한 숲이 우거진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우뚝 솟아있는 나무들 또한 굉장한 볼거리이다. 숲 속을 이렇게 거닐면 몸의 병도, 마음의 병도 이 나무들이 모두 빨아들일 것만 같다.
1km보다 조금 짧은 산책길을 돌아나왔더니 훨씬 더 가볍고 산뜻해진 것만 같다. 바람에 스치우는 대나무의 부대낌 소리도 나쁘지 않고. 사람들의 염원을 엿보는 것도 좋다.
다시 등나무군락으로...
혼자 설 수 있는 힘이 없는 등나무들은 숲 주변의 소나무, 팽나무, 대나무 등을 지지대 삼아 성장하고 있다. 지금은 꼭 귀신이 머리를 풀어놓은 듯한 모습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꽃천지가 될 것이다. 보통 등나무들이 타고 올라가는 나무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기구한 운명을 지녔지만 범어사의 스님들이 잘 관리한 덕분에 이 정도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고 한다. 서로 다치지 않을 정도로 어우러지도록 말이다. 등나무가 심하다 싶으면 밑둥을 잘라내고, 나무대신 타고 오를 수 있는 쇠기둥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묘하게도 범어사의 첫 인상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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