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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마을 이야기(Europe)/이탈리아(Italy)

[Firenze] 이탈리아 두오모의 대명사가 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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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두오모 정면>

'피렌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누가 뭐라해도 흰백색의 벽 위에 '주케토(주교님들이 쓰는 붉은색 모자)'와 비슷하게 생긴 돔이 얹어져 있는 '꽃의 성모 마리아(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성당이다. 피렌체는 미켈란젤로도 떠오르게 하고, 메디치 가문도 그렇고, 베끼오 다리, 다비드상... 너무나 많은 볼거리와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지만 두오모 앞에선 모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피렌체에 오기 전부터, 오면서 오로지 나의 관심사는 '베끼오 다리'였다. 그래서 큰 관심이 없었던 두오모 앞에서 나도 결국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본의 아니게 제일 먼저 쫓아가게 된 곳이 두오모이다. 산타 마리아 누벨라역에서 내려 5분 거리에 있는 민박집(이 민박집은 정말 거리가 가깝다는 것 외에는 하나도 줄게 없는 민박집이었다)에 가방을 풀고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야경투어를 위해 민박집에 있던 다른 친구들과 이곳으로 오게 됐다. 모이는 장소가 두오모 옆의 시뇨리 광장이었으니까.

<잠시 민박집에 대해서...>
내가 묵었던 곳은 '아레나민박'으로 이탈리아에서 묵었던 민박 중 가장 좋지 않았던 곳으로 기억한다. 여행에 있어 민박집(숙박)이란 어떤 한 사람에게는 여행에서 편안함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곳이고, 어떤 한 사람에게는 고국에 대한 향수를 채우고 더불어 경제적 여유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곳이라 어느 한 곳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조금 더 편안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숙박시설을 원하는 건 모든 여행자들이 원하는 바, 숙박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좀 더 나은 곳이 되길 바란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도미토리를 썼던 사람들도 대체로 불쾌감을 가졌던 것 같다. 처음 맘이 상한 것은 '야경투어가 10유로인 것을 특별히 우리 민박에서만 5유로 보조한다. 그러니 5유로만 내면 된다'고 자신만만하게 자랑했었는데 야경투어를 나가보니 다른 민박들은 무료로 해준다는 것이다. 사실 돈 5유로 정도 기분좋게 투자할 수 있는 투어였지만 자기들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양 떠벌리는 것에 맘이 좀 상했다. 작은 것에서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이 안좋아 보인다고 그 뒤로 부터는 식사도, 식사시간도, 운영방식도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니 민박을 찾는 분이 있다면 여러가지 측면에서 잘 고려해보시길... 위치는 아주 만족이다.


살짝 딴길로 샛구나. 저 멀리 골목에서부터 히끗히끗보이는 두오모의 돔이 내 가슴을 이렇게 뛰게 만들지 몰랐다.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내 몸의 울림을 넘어 귓 속에서까지 맴돌 정도로 내 마음을 후려쳤다. 거대함에 장엄함까지 느껴지는 두오모의 모습이다.

피렌체 두오모의 돔

일명 브루넬레스키의 돔이라고도 불린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는 1296년 짓기 시작하여 140년이 걸려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1463년 완성된 이 돔 때문이다. 두오모의 첫번째 건축가인 아르놀포 디 캄피오가 전체 건물을 세웠지만 천정을 완성하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하늘이 뻥~ 뚫린 성당의 천정을 마무리해야 완성이 되는데 지금이야 크레인과 같은 장비가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장비는 꿈도 꿀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돔을 완성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별로 없었나 보다. 결국 금세공사였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아이디어로 현재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그는 로마의 판테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중벽의 구조를 고안해냈고, 단순히 둥근 돔이 아닌 8각형으로 디자인 된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었다. 또한 최초의 기중기를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대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생각했지만 그는 완성해냈다. 그의 경쟁자 기베르티가 해 내지 못한 것을 그는 이루어냈고 역사는 기베르티가 아닌 브루넬레스키를 기억한다.



'흰백색 위의 붉은 돔...'이라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는 두오모는 흰색이 아니었다. 그러니 실제로 보지 않고선 어떤 것도 단정해서는 안되느니. 대리석은 모두 흰색인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색을 가진 대리석도 있다는 것을 이 곳에서 처음 알았다. 두오모는 핑크빛의 대리석과 녹색빛의 대리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렇게 색을 가진 대리석을 모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하얀 대리석 옷을 입고 있는 밀라노의 두오모는 너무 밝은 흰색과 뾰족함으로 위압감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피렌체의 두오모는 여러가지 색들을 조화롭게 배치한 것과 각이 진듯 하면서도 두리뭉실한 형태를 가진 것이 조금은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문득 저 돔이 두오모의 이름처럼 붉은 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구나.

<조토의 종탑과 두오모>

대리석도, 빛깔도 멋지지만 그런 대리석 조각들을 조합하여 만들어 놓은 무늬들에서도 건축가들의 섬세함을 엿보게 한다. 그냥 벽돌을 쌓듯이 가져다 붙일 수도 있을텐데 각 면마다 특색을 드러내면서 단순한 건물을 넘어 멋진 예술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그들의 세심하면서도 야심찬 정성을 볼 수 있게 된다. 바라볼수록 그들의 마음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실내를 둘러보기엔 이미 너무 늦은 시각이라 겉모습만 둘러봤는데도 질리지 않는다. 무슨 탑돌이도 아니고, 몇 바퀴를 돌았는지 이젠 셀 수도 없겠다. 돌면 돌수록 새로운 것을 보게 되니 제대로 이 겉모습만 바라보기에도 몇 일은 족히 걸릴 것만 같다. 조금씩 내려앉는 어둠을 뒤로 하면서 내일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넨다. 우리 좀 더 밝을 때 서로를 내보이며 참 만남을 가져보자꾸나.

++ 다음날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를 다시 찾았다. 꽃의 도시라 불리는 피렌체를 상징하는 이름을 가졌는데도 그 이름보다는 단순히 '두오모'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한 때 두오모가 성당이름인줄 알았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피렌체 두오모이다. 그러다보니 내겐 피렌체와 두오모가 동일어로 느껴진 적도 있었다. 대부분의 많은 여행자들이 피렌체 여행을 이곳에서 시작하니 어찌보면 같이 보는 것도 억지는 아닐 듯 싶다.

<두오모 벽면>

두오모는 항상 공사중? 두오모를 둘러보다 보면 군데군데 보호대와 펜스가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오모는 늘 공사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 판단한 것이다. 물론 두오모가 공사를 할 때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더러워진 대리석을 닦아내는 일종의 청소 작업 중인 경우가 더 많단다.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보니 책임감을 가지고 관리를 해야하고, 무엇보다 문화재 관리비용을 유네스코에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세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곳이니 이렇게 얻게 되는 수입도 만만찮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런 문화재를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찌됐건 닦아낸 벽면과 그렇지 않은 벽면은 확연히 표가 난다. 그러고 보면 공기 중에 우리가 모르는 먼저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다. 에효~

<두오모 정면 장식>

역시... 성인들의 머리에는 금으로 광채가 나는 구나. 이제 아오이와 준세이의 흔적 남아있는 곳, 두오모 정상으로 향한다. 두오모 본당을 둘러보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보다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기 위해 저 긴 줄을 감수하고도 올라가려하는 것일까. 그들도 냉장과 열정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나 보다.

<큐폴라 입장권: 8유로>



어둑한 복도를 따라 빙글빙글 올라가니 조각상들도 보이고, 알 수 없는 모형들도 보인다. '아~ 이제 다 온 것인가'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잠시 또 다시 정신없이 올라가야 한다. 베로나에서 힘들었던 기억을 그새 까먹어버렸다. 470여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분좋게 오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멋진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들을 삼켜버릴 수 있는 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위로 올라갈수록 통로는 좁아지고 경사도 급해진다. 과거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길을 오갔을까. 혼자 다니려면 꽤 무서웠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돔의 벽화>

드디어 돔 가까이 도달했다. 이쯤 오니 마음은 꼭 하늘나라 문 앞에 선 것만 같다. 힘들었다는 생각도 잠시, 이번엔 성당의 천정화에 정신을 빼앗겨 버린다. 위에 있는 그림을 보면 난간에 걸터 앉은 사람들이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마구 뛰어내릴 것만 같다. 어떻게 천정화를 저렇게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살아있는 듯한 이 느낌에 슬쩍 겁이 난다.

<천정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

1574년에 완성된 '바사리'라는 사람의 작품으로 제목이 '최후의 심판'이다. 4년간의 작업으로 이런 생생한 표현을 해냈다니 그들의 회화는 실력이상의 무엇이 담겨있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만 생각했었는데 획기적인 작품이다.


<조토의 종탑>

참 아이러니하다. 두오모의 매력에 빠져 큐폴라에 올라가면 정작 두오모를 바라볼 수 없고, 종탑에 반해 종탑을 찾으면 종탑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것이 진리이지만 그 진리를 잊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 좋다는 생각에 거기에 몰두하면 정작 내가 몰두한 것은 어느새엔 사라지고 전혀 다른 것을 보게 되는 것. 그래서 뭔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한 걸음 물러서서 보라고 어른들이 그러시나 보다. 나는 두오모가 좋아서 두오모에 올랐는데 결국 두오모는 보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아니 그 이상의 다른 것을 보고 내려왔기에 후회는 없다.


조토의 종탑

건축가보다는 미술가로 더욱 잘 알려진 조토 디 본도네와 그의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가 시작하여 프란체스코 탈렌티가 완성하였다. 두오모의 돔보다는 6m정도 낮지만 이곳도 피렌체 시내를 둘러보기에 아쉬움이 없는 곳이다. 특히 414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고딕양식의 테라스를 통해 멋진 두오모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원래 설계때에는 뾰족한 첨탑의 모습이었다는데 무슨 이유인지 지금은 사각형의 각진 모습이 되었다. 각기 다르게 생긴 창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오모의 큐폴라를 오르는 사람들은 2부류가 있는 것 같다.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피렌체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싶은 사람, 지금도 영화 <냉정에서 열정사이>의 주인공 준세이가 걸터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혹은 그들 사랑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 동양인 관광객들이 많은 것을 보면 영화의 흔적을 찾아 온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이곳이 영화로 개봉되고 나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고... 그리고 그들의 낙서 또한 적지 않다. 그래도 세계 문화재인데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다. 지난 밤 여기에서 영화 주제곡을 꼭 듣고야 말겠다고 아이폰을 컴퓨터 스피커에 가져다대고 잡음에도 불구하고 녹음시키던 두 여학생이 떠오른다. 그녀들은 이 곳에서 영화의 흔적을 만났을까?

<큐폴라에서 내려다 본 피렌체 시가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피렌체 시가지는 상상 이상이다.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고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뛰어내릴수도(?) 있을만큼 나를 빨아들인다. 넋 놓고 바라보기만 1시간이다. 그래도 아쉽지 않다. 지붕 그들에 앉아 있으니 내려가고 싶단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곳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곳이 아님을, 이곳을 오가던 많은 사람들이 왜 그리도 자부심을 가지고 이곳을 지켜내려 노력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피렌체만이 가진 모습을 당당히 보여준다.


맘 같아선 저녁 문 닫을 때까지 주저앉아 있고 싶지만 마치 펌프질 하듯 몰려드는 인파의 물결 속에서 나 혼자만 이 즐겨움을 만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쉽지만, 언제 또 이곳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내 자리를 양보하고 내려온다. 다음 번에는 큐폴라가 아닌 조토의 종탑으로 올라가야 겠다. 두오모의 돔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오른쪽은 확실히 브루넬레스키가 맞는데 왼쪽이 캄비오가 맞는지 모르겠다. 그랬던 것 같은데... 브루넬레스키의 시선을 쫓아가다보면 두오모의 돔에서 멈추게 된다. 그가 이 돔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뇌를 했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그 때 그 시절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자리를 지키며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나 무너지지나 않을까, 죽어서도 마음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을 것 같다.



<18세기 두오모와 종탑, 그리고 세례당>

두오모의 완전한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원래 대부분의 두오모는 종탑과 세례당이 함께 있단다. 물론 피렌체의 두오모와 종탑, 세례당이 한꺼번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함께 있어야 두오모의 권위가 완전한 갖춰졌다고 생각했다 한다. 지금은 두오모를 중심으로 많은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지만 당시에는 완전히 개방된 모습이 이곳의 모습을 더욱 장엄하게 만드는 것 같다. 또한 그 시절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것도 놀랍고. 하긴 두오모에만 3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말해 뭐할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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