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다이어리>
내게 파리는 꿈에 그리던 곳도 아니었고, 언젠가는 반드시 가야할 곳도 아니었고, 동경해 마지않는 곳도 아니었다.더군다나 그 곳엔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 곳에 가게 되었을까?
우연찮은 것도 아니고... 지금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올 해는 해외여행 계획이 없었다.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종플루도 그렇고, 개인적인 경제상황도 그렇고, 또한 앞으로 몇 년 내에 다녀와야 할 곳이 몇 군데 생겼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이번엔 한타임 쉬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만약에 가야한다면 그곳은 프랑스 파리가 아니라 히말라야가 있는 카투만두가 1순위 였으며, 2위는 발트3국이었다.
<안나푸르나봉> <발트3국>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꿈꾸며 시중에 나와있는 네팔관련 책은 거의 다 읽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포의 거머리와 예상보다 높은 트레킹 비용, 7월부터 시작된다는 우기의 압박... 그 외에도 몇 가지 사정으로 꿈에 그리던 안나푸르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발트 3국.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들어가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야간버스로 이동...
하지만 이것도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라서 준비할 수 있는 일정을 너무 많이 놓쳐버렸다. 이미 내가 가능한 날짜엔 항공티켓도 없었고, 일정에 드는 비용도 평소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올라있었다. 그렇다고해서 단체일정을 선택하는 것은 맘에 들지 않았다.
한번의 여행으로 어줍잖은 용기를 얻은 나는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여행을 기획해보고 싶었다. 결국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원하는 곳으로의 여행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는(일행과의 약속때문에) 생각을 하게되니 평소 여행이라고하면 자다가도 눈을 떴던 내가 조금은 퉁~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다녀와서 밀린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튼...
어쨌든 가야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가라는 가족들의 충고(?)에 따라 마음을 새로 먹고나니 올해 초에 구입했던 다이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다이어리의 표지가 파리이다. '아하~ 어쩌면 올해가 시작될 때부터 나와 파리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파리에 조금은 마음이 열린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파리여행에 대한 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이번 여행을 그려넣어보는 거야'라는 자기 합리화로 여행을 시작한다.
<항공티켓: 인천-헬싱키-파리>
맘은 여행의 즐거움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어도 여전히 공항, 비행기, 하늘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처음으로 인천공항을 갔던 날, 인천공항에 대한 설명과 그 주변에 피어있는 많은 꽃들이 이런 이미지를 가지는데 한 몫을 했다. 평소에도 하늘을 날으는 비행기를 보며 '저기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싣고 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엔 내가 새로운 곳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싣고 날아간다.
<공항 트레인>
지난번 유럽행에서는 KLM을 탔었는데 이 기차를 타고 이동한 기억은 없다. 그런데 이번 핀항공은 게이트가 너무 멀어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물론 기차를 타고 채 5분도 가지 않지만 말이다. 너무나 쾌적한 모습이 맘에 든다. 우리 지하철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대신에 앉는 좌석은 없다. ㅎㅎ
<핀항공>
내가 맡긴 짐도 이곳에 실리고 있겠지. 예전엔 비행기를 타면 꼭 국적기를 타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나라 여행객을 위한 해외항공도 굉장히 많아졌고, 한국인들을 위한 서비스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 승무원과 더불어 한국식 기내식, 한국어 안내방송 등... 핀항공도 나름 괜찮았다. 에어컨이 너무 빵빵한 것만 빼면... 근데 비행기엔 왜그리 에어컨을 그리도 빵빵하게 트는건지, 지난번 KLM도 그렇더니만 핀항공도 그랬다. 외부 온도가 낮아서 따라 낮아가는건가? 개인적으로는 환경도 생각할 겸 실내 온도를 조금 높이는 것도 괜찮을텐데...
대부분이 담요로 둘둘~ 감으면서 에어컨은 마구 틀어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맘에 걸린다.
<항공 좌석의 모니터화면>
KLM에서도 이렇게 개인화면이 다 있었나? 얼마지났다고 기억이 안난다. 벌써 이렇게 기억력이 쇠퇴하고 있다니...
한국어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다 된다. 그리고 한국 영화와 TV프로그램도 몇 가지 있다. 뿐만 아니라 항공외부 카메라, 현재 위치 지도도 파악할 수 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유명 영화는 한국자막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영어로만 들어야 한다. 영어자막이라도 좀 넣어주지... 역시 hearing은 어려워. 난 헬싱키까지 가면서 과속 스캔들과 무슨 만화였는데 제목이 기억 안나는 만화를 봤다.
헬싱키까지 8시간, 다시 파리까지 3-4시간. 비행기를 오래 탄다는 것이 미칠듯이 어려운 일인지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내가 잠이 많다는 것에 이렇게 감사한 적이 없었다. 헬싱키로 8시간보다는 헬싱키에서 파리로의 3-4시간이 더 힘들었다. 아마도 다왔다는 생각 때문에 맘이 급해진 탓도 있을 것 같다.
<핀항공의 기내모습>
<여행의 동반자>
여행을 할 때는 읽던 읽지 않던 한권 이상의 책은 필수이다. 이번 여행의 동반자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선택했다. 일단 표지가 넘 맘에 든다.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문체나 단어의 선택이 참 맘에 든다. 하지만 그가 쓴 것이 와닿은 건지, 번역한 이의 선택이 와닿은 건지는 알수가 없다.
난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니까.. ㅎㅎ
<핀항공의 기내식>
맘에 들었던 기내식은 2번째 것과 4번째 것이다. 비행기 처음 탄 사람이 기내식을 다 찍어서 올린다고 친구가 놀린적이 있는데 그래도 난 음식 사진이 좋다. ^^ 처음 먹었던 기내식은 아침식사도 못하고 비행기에 오른지라 누구말처럼 책상다리와 행주빼곤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맛있게 먹었고, 마지막은 이름이 뭔진 모르겠지만 약간의 단맛이 느껴지는 꼬마당근도 맘에 들었고(큰당근은 잘 안먹는데도) 만두피처럼 만들어져 토마토 소스를 올린 것도 좋았다.
사진엔 없지만 헬싱키에서 파리로 가는 항공기 안에서는 기내식을 먹지 않았다. 파스타 비슷한 것이 나왔는데 냄새도 좀 역하고, 찬에어컨 바람을 계속 쐬었더니 몸의 상태가 말이 아니라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세상에~~ 내가 먹는 것을 마다하다니... 이런 일도 있구나. ㅋㅋ
<헬싱키 반타공항>
헬싱키에서 환승을 위해 내렸는데... 세상에 한글이다. '우리나라와 핀란드가 그리 친숙했던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아니면 그만큼 여행객이 많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여행은 아직은 그리 보편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회복지를 전공한 나도 이곳에 대한 정보로는 복지국가인 스칸디나비아지역 3국 중의 하나인 핀란드, 그리고 세계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리 인기없는 노키아 정도가 다인데 말이다. 이후 일정으로 짧게 계획되어 있는 헬싱키의 여정이 파리여정보다 더 기대된다.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 내 열차티켓 구입처>
드디어 파리에 도착이다. 첫관문은 샤를 드골 공항이다.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감사한 일인줄 몰랐다.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은 출발부터가 너무 힘들다. 지금부터 내가 마시는 공기는 프랑스 파리의 공기이다. 한국과는 다르다. 후훗~ 훤~한 시간에 도착하니 두려울 것도 없고, 일단 호텔만 잘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샤를 드골 공항은 파리국철인 RER이 바로 연결된다. 우리나라 철도역에서 지하철이 바로 연결되는 것처럼...
초행길인 사람에겐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버스는 좀 부담이다. 안타까운 것은 표지판이 이기적이다. 그래도 국제공항인데...
헬싱키에 있는 한국어는 고사하고, 영어표지판도 너무 소홀하다. 제대로 정신차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기 쉽다.
파리 남역까지 RER비용 8.5 EUR
유레일 패스가 있으면 공짜로 RER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TGV안내소 옆에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구입하고 나와 왼쪽으로 틀면 기차 시각표가 나오고 플랫폼으로 나갈 수 있다.
<지하철 및 RER 티켓>
비용에 따라 이용 구간이 달라지지만 하나의 티켓으로 버스와 지하철, RER 모두를 이용할 수 있다. 구간이 많아질수록 비용은 조금씩 높아진다. 하지만 8.5 EUR로 짜리 티켓을 사면 웬만한 곳을 다 갈 수 있을 것 같다. 파리 외곽도로, 몽마르뜨와 가까웠던 우리호텔까지도 무사히 갔으니 말이다.
<RER 내부모습>
대개의 경우 RER B선을 타고 북역(gare du nord)까지 가서 그 곳에서 자신의 목적지로 가는 지하철을 갈아타면 된다. 25분에서 30여분 걸린 것 같다. 공항에서 북역까지 이동하면서 외부 모습은 외곽지역이라 그런지 조금은 음침함을 보인다. 하지만 끊임없는 담벼락 낙서 작품들이 심심치 않도록 도와준다. 파리의 북역은 유럽의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기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으로 아주 번화한 곳이다. 우리도 그 곳에서 그 유명한(?) 지하철로 환승!!
<La Chapelle 지하철역>
북역에서 나와서 조금 걸어가면 지하철로 환승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기차역에서 완전히 나온 후 다시 지하철 역을 찾아야하므로 조금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기차역 출구에 노란모자와 노란유니폼을 입은 안내자가 있고, 거기서부터 땅바닥에 붙어있는 노란 발자국을 따라가면 된다. 아마도 지하철 수리중인 듯 하다. 파리지하철의 악명(?)은 익히 들었으나...
사실 지저분하고, 오래되고... 이런건 내게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이지 미로처럼 생긴 지하철역의 구조는 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최악이다. 더군다나 그 흔한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듣긴 했으나 그런 것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얽혀있고, 계단도 엄청나게 많을 줄은 몰랐다. 도시계획은 철저하게 하면서 땅밑은 왜 새로 계획하지 않나? 안보인다고 그러나? 아님 이것도 자기들의 전통이라 생각하나?
드디어 이곳에서 파리의 일상과 만났다. 지하철역이 이층이라 아래로 내려볼 수 있었는데 좁은 골목에 차들이 마구잡이로 다니는... 정말이지 파리의 복잡함을 한눈으로 보여준다. 이곳도 심상찮은 곳임이 틀림없다.
<호텔에서 본 파리의 건물들>
약간은 외곽지에 자리한 Campanile Berthier호텔. 호텔에 들어서니 마음이 놓인다. 파리의 건물들에서는 옥상에 붉은 벽돌 굴뚝이 항상 보인다. 굴뚝은 한 건물에 하나만 있으면 될 듯한데 세대마다 달려있는지 무지하게 많다.
<헤르메스 스카프>
빼지카 굴뚝이라고 했던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실내 난방 및 벽난로를 위한 굴뚝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전통을 살리는 그들의 정신이 담긴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저 굴뚝은 이제는 파리의 상징으로도 손색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파리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은 건물 위에 저런 굴뚝이 없다면 너무나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호텔에서 내려다 본 풍경>
아래 보이는 지하도로가 파리외곽도로라고 한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다이아나가 죽었다는 그 곳도 나오나? 괜히 기분이...
파리는 저녁해가 우리나라보다 늦게 진다. 훤한 하늘 덕에 이른 시간이라 착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9시를 넘어 10시를 향해간다. 비행기에서 너무나 고생했더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일단 내일여행을 위해 1차적으로 주변을 살펴야하는데 맘과 다리가 영 움직이지 않는다. 아쉽지만 한국에서 가져간 컵라면 하나먹고 씻고 난뒤 침대에 누웠다.
<Campanile berthier호텔 객실>
아주 단촐하다. 단촐하다 못해 허전하다. 좁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냉장고가 없다는 것, 창문에 방충망도 달려있지 않다는 것, 에어컨은 너무 시달려 싫고, 문을 살짝 열어두고 싶은데 모기 걱정에 그것도 쉽지 않다. 불을 끄고 살짝만 열어두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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