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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마을 이야기(Asia)/중국(China)

상하이에서 엿보는 중국 역사: 손중산 고거 & 일대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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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중산 고거(Sun Yatsen's Former Residence)

 

 

우리에게 쑨원으로 잘 알려진 신해혁명의 주역. 그가 살았던 집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산책 겸 다녀왔다. 본명은 '손문', '중산'이라는 호를 가진 그는 중국에서는 '쑨중샨'이라고 불린단다. 중국 곳곳에 있는 '중산거리', '중산공원' 등은 모두 쑨원의 호를 딴 이름이라고 한다.

 

쑨원은 중국이 현재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밑거름을 만들었고, 대만과 중국 모두에게서 존경받는 인물이라 그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다녀온 뒤 '중국의 임시정부'라는 말은 더 이상의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10여분을 걸었을까, 말끔하게 정리된 거리는 중국에 대한 인상을 크게 바꿔놓았다. 프랑스 조계지역이었던 터라 주변의 집들은 대부분 서양식 주택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비슷한 모양을 한 집들이 쭉 늘어서 있어 '손중산고거'를 자칫 그냥 지나칠 뻔 했다. 

 

 

▲ 손중산 기념관

 

입장료 20원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쑨원이 맞이 한다. '어서오게, 맘 편히 둘러 보게나.'하고 인사하는 것 같다.

실제로 쑨원이 생활했던 건물 1동과 옆 건물 1동을 더 이어 손중산기념관을 조성했다. 기념관을 먼저 둘러보고 나면 쑨원이 생활했던 집을 둘러볼 수 있다.

 

 

 

기념관에는 쑨원이 평소 사용했던 일상용품과 그의 사진, 혁명 당시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임시정부 시절 사진은 우리나라 임시정부 사진과 오버랩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쑨원과 그의 아내 송경령(쑹칭링)

 

하와이, 홍콩에서 공부하면서 서양의 문물을 일찌기 접했고, 의사로 병원을 개업하기도 했지만 점점 어려워져가는 고국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 없어 신해혁명에 일조했다. 신해혁명이 비록 '미완의 혁명'이라 불리더라도 쑨원의 '삼민주의'는 큰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다. 제국주의를 지양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경제를 부흥하겠다는 그의 정치적 이념은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던지는 의미가 클 듯 하다.

 

쑨원의 아내 송경령은 쑨원의 두번째 부인인데, 일본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있던 쑨원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26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했다. 당시 쑨원은 이혼한 상태도 아니었고, 집안의 반대도 극심했다는데 시대적 상황으로 봤을 때 아주 파격적인 러브스토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송경령의 동생은 장제스의 부인이었던 송메이링이다.

 

 

 

 

기념관과 달리 고거에서는 사진촬영이 불가능하고, 덧신을 신어야만 입장할 수 있다. 쑨원은 이 집에서 7년 정도 지냈고, 이 곳에서 지낼 때엔 이 마당에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단다. 본래 캐나다 출신 화교의 소유였지만 쑨원에게 기증했고, 이 곳에서 당 회의 같은 중요한 모임도 있었다. 쑨원이 죽은 뒤에도 부인이 한 동안 지냈던 곳이다.

 

 

 

회색 담이 있는 곳이 손중산 기념관, 짙은 색에 붉은 지붕이 있는 곳이 손중산 고거이다. 학창시절 세계사 교과서에서 보고, 한참을 잊고 있었던 인물을 다시 살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름 의미있는 여정이었다.

 

일대회지(1st National Congress of the CCP)

 

 

 

이름조차 생소한 이곳은 일대회지, 중국 공산당의 1차 전당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곳인데 경계는 엄청 삼엄하다. 입구부터 가방검사도 하고, 티켓도 발부받아야 하고 줄지어서... 대부분 중국인들이 관람객들이었다.

 

 

 

 

중국 공산당과 관련된 내용을 시간별로 나열해 놓았고, 당 전당대회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다. 당시 프랑스 경찰에 발각되어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마지막 폐막식은 배에서 했다고 한다. 여기도 쑨원의 사진이... 사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마오쩌둥 이겠지만 낯익어 그런지 쑨원이 더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지도는 참 인상 깊은데 인근 지역을 상징적으로 표시해두었는데 한반도에는 아무것도 없다. ㅠ

 

 

단체 중국인 관광객도 많았고, 학생들 무리도 있었다. 그네들에겐 교육적 차원에서 꽤나 중요한 공간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를 갖진 못했다. 남의 나라이기도 하고, 이념이 달라서이기도 할테고, 온통 한문으로 씌여있는 설명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아마 북한에도 저런 곳이 있겠지. 통일이 된다면 그땐 좀더 눈여겨 볼 수 있으려나.

일대회지는 좀 어려운 곳이었지만 손중산 고거는 한번쯤 가볼만도 하겠다. 가는 길에 있는 프랑스 조계지 건물들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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