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낙동강을 내려다볼 수 다람재가 나왔다. 이 길이 맞나 싶어 잔뜩 긴장했는데 풍경 하나로 모든 긴장이 사라져버렸다. 잘못 들어온 길이어도 충분히 용서해줄 수 있을 법한 풍경인데 고맙게도 저 아래 나의 목적지 도동서원이 보인다. 제대로 찾았다 생각하니 더 마음이 푸근해진다.
다람재는 다람쥐를 닮았다하여 불린 이름이란다.
달성 도동서원은 가을이 아름답다는 말에 가을이 오기까지 열렬히 기다렸다. 안타깝게도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지만 가을의 초입 피나는 노력으로 노란빛으로 물들고 있는 거대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잿밥에 혹~ 한다고 서원보다 은행나무에 먼저 시선을 빼앗겼지만 가을엔 왠지 그래도 될 것만 같다.
무려 400년이나 살았다는 은행나무의 위용이다.
영월 청령포에서 만난 관음송은 최소 600년, 오죽헌의 배롱나무도 600년, 이곳 도동서원에서 만난 은행나무는 400년... 길어야 100년을 겨우 기대하는 수명으로 온 세상을 손에 쥔듯 자신만만한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나 나무나 의지할 곳을 찾아야하나 보다. 곳곳에 시멘트 지지대가 세워져 있다.
도동서원이 김굉필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라 이곳의 상징 은행나무에도 '김굉필 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수월루
도산서원, 병산서원, 소수서원을 보고 서원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나는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모든 서원을 다녀보리라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도동서원은 우선순위에서 꽤 상위에 있는 곳이라 발걸음도 가볍다.
5대 서원(병산서원, 옥산서원, 소수서원, 도산서원, 도동서원)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지만 그에 비해 유명세는 조금 덜한 곳,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곳이다. 이래뵈도 보물(제350호)이 숨겨진 곳이다.
▲ 환주문
"내 안의 주인을 부르는 문"
거대한 수월루를 지나니 무척 작은 환주문이 나온다. 환주문을 넘으면 서원 앞마당과 주요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그런 입구 치고는 문이 너무 작다. 아마도 학문을 하는 자의 자세는 낮고 겸손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의 주인을 미처 찾지 못하고, 환주문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빼앗겨 버렸다.
기와 위에 얹어진 토기도 묘하고,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나무 구조물에도 눈길이 한참 머무른다.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법한 그 자리까지 챙겨 이렇게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했다니 감동이고, 동시에 반성이기도 하다.
한가지 더, 환주문을 넘을땐 발 아래로 놓쳐서는 안된다.
▲ 중정당
환주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중정당이다. 양쪽으로는 유생들의 숙소였던 거인재와 거의재가 있다.
중정당은 대부분의 수업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대들보에는 서원 중의 서원(최고)이라는 의미로 흰색의 창호지를 휘감았다. 최근에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래전 부터 있었다는데 낙동강을 오가는 배는 창호지에 비친 빛을 보고 도동서원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건물 전체에 유생들과 스승이 나눈 대화의 조각조각이 흩어져있지는 않을까. 그 조각의 퍼즐을 맞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가득이다.
중정당 기단의 바위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는 김굉필 선생에 대한 존경을 담아 전국 각지에서 보내준 돌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놀랍게도 완벽하게 짜맞추었다.
▲ 용머리
용이라 하기엔 익살스러운 표정을 가졌지만 나름 여의주도 물고 있다. 도동서원의 용머리는 총 4개이지만 이 중 3개는 도난을 당해 본래의 것이 아니라 후에 다시 만들어진 것이란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것을 보아 이것이 진짜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 토담
도동서원이 보물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토담에 있다. 사실 토담이 보물 제350호인데 음양의 조화를 표현한 기와와 진흙 속에 박혀있는 장식무늬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저 '이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장판각
▲ 박물관
여느 서원과 같이 가장 위쪽에는 김굉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고, 주변으로는 작은 창고, 서고 건물들이 있다. 김굉필 선생은 조선시대 5현인에 들어갈 만큼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학문을 닦은 분이다. 그러니 당시 학문을 하던 사람들에게 도동서원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안내문을 읽으며 한 바퀴 돌고 나니 처음 문을 들어설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학(學)을 접하고 익힐 기회는 많아졌지만 한없이 가벼워져버린 학(學)의 아이러니 속에서 무엇이 진정 세상을 위한 것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 할 때인 듯 하다. 역사 속의 선조들을 생각하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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