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게!!
내게 동해는 '강원도'보다 '경상도'에 더 가까워서 일게다. 큰 맘 먹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 일상이 지루하다 싶을 때, 갑자기 일상을 떠나고 싶을 때 훌쩍 찾을 수 있는 곳이라 수도 없이 이 곳을 찾았었다.
시원한 바람도 있고, 탁 트인 시야에 푸른 바다까지... 어느 하나 아쉬운게 없다. 꽃게인지, 대게인지 게다리가 테마인 해맞이 공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등대도 등대지만 요즘 같은 날씨엔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공원을 산책하는게 가장 좋을 철이다.
영덕에는 해맞이 공원보다 덜 알려져있지만 이 못지 않은 축산항과 죽도산도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적은 있지만 힘들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한번도 올라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왠걸... 이렇게 흐린 날, 이렇게 후덥지근한 날, 한번 올라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어 무작정 하늘을 바라보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죽도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양쪽으로 대나무가 지천이다. 대나무 숲에서 울리는 사각이는 소리는 귀까지 시원스럽게 만들어 준다.
드디어 도착한 정상. 도대체 뭘 보고 겁을 먹었나 싶고,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작은 언덕 산책이라 하기에도 미안할 만큼 짧고 어렵잖은 길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축산항의 풍경은 안개가 자욱하게 가려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강과 바다가 만나 하나를 이루는 풍경, 언덕 아래로 오밀조밀 붙어있는 집들, 새벽까지 바쁘게 움직였을 작은 배들...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풍경이었다.
올라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올라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함까지 든다.
다시 언덕을 내려오면 축산항과 작은 해수욕장을 잇는 블루로드 다리가 있다.
아직 이른 계절이라 물놀이하는 사람들 대신 바닷새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왠지 방해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살짜쿵~ 다리를 건너간다.
이 날의 기억이 너무 좋았을까, 또 한번 바다가 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 다시 찾았다. 지난번엔 빠르게 훌쩍 지나갔으니 이번엔 느긋하게 바다와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해보기로 했다.
영덕 블루로드 B코스 "푸른 대게의 길"은 총 15.5km의 거리로 천천히 걸으면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충분히 하루에 걸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였다. 해맞이공원에서 전투적 각오(?)를 새로이 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인데 나는 언제부터 걷는다는 것에 이렇게 부담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 행위가 어째서 특별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미 답은 알고 있을 수도...
블루로드 B코스는 4개의 코스 중 가장 아름답다고 불리는 코스이기도 하다. 아스팔트를 따라 걷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바다와 어우러져 걸을 수 있고, 또 어촌마을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잠시나마 빠져볼 수 있는 길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다. 나 역시 네 개의 코스 중 B코스가 가장 맘에 든다.
평일이기도 하고, 햇빛도 쨍하니 내려쬐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아스팔트에선 뜨거운 열기와 오가는 차들 때문에 빨리 바다 가까이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바닷길에 이르니 파도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적막감 때문에 오히려 더 멀미가 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뚝 서 있는 해녀상과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를 보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는 순간 파도와 끈질기게 싸워야했을 해녀들의 고단함에 빠져들어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들과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중간중간 길을 잃을까 블루로드를 알리는 표지판이 적지 않다. 또 많은 여행지에서 볼 수 있는 스탬프 투어도 가능하다(아마도 완주했을 때 기념품을 주는 듯). 블루로드 B코스는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어 좋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대게 원조마을.
우리 흔히 알고 있는 대게는 크기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클대(大)를 써서 큰 게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대게의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비슷하게 생겨 대게라 부른단다. 특히 멀리 죽도산이 마주보이는 이 마을 앞에서 잡은 게를 그리 부른단다.
대게의 원산지에 대한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기에 무엇이 원조라 확신할 수 없지만 이 마을 이름이 그렇다는 거다.
바다와 언덕을 번갈아가며 오르다보면 이름 모를 들꽃을 만나기도 한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이런 꽃을 만나는 것도 반갑기 그지 없다.
다시 바닷길을 따라 걷다보니 드디어 마지막 종착점 죽도산과 등대가 보인다. 끝까지 갈 수 있을까, 하다 안되면 돌아가야지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끝이 보이는 지점까지 왔다. 여기에선 포기할 이유가 없다. 더 빨리,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끝지점까지 무사히 온 나를 축하도 해 줄겸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걸어본다. 피곤한 발도 조금 쉬어가라고... 걸어서 15km가량을 왔더니 얼마 전 봤던 풍경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이 바다가 다가온다.
왠지 처음으로 비밀을 나눈 친구를 보는 느낌이랄까. 역시 오길 잘했다며, 다시 걸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꼭 다시 올거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축산항을 떠난다. 이로서 나의 블루로드 B코스 완성! ^^
★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라면 미리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출발지점에 차를 세우고 걸었던 터라 차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가야 했다. 해가 지지 않는 한 버스를 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후 5시 전에 돌아가는 막차는 이미 끝나버렸다. 친절한 지역 주민들 덕분에 콜택시를 불러 돌아올 수 있었지만 혹시나 미리 파악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곳에서 알게 된 새로운 정보!
블루로드의 B코스는 끝났지만 축산항에서 C코스가 새롭게 시작된다. C코스에 있는 대소산 봉수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절정이라해서 그냥 돌아서기 아쉬운 마음을 담아 봉수대로 향했다. 도보코스라 걸어야했지만 대소산 봉수대는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다. 한참을 걸었으니 이젠 차를 타도 된다며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봉수대를 찾았다.
조선시대 초 지역상황을 알리는 통신수단으로 활용했던 봉수대. 이곳 봉수대의 신호가 북으로 북으로 향하면서 한양의 남산까지 이어졌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바로 이것이 대소산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축산항의 풍경이다. 약간의 어스름한 탓에 깨끗하게 보이진 않지만 요즘 공기상태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면 크게 감사해야 할 듯... 내가 걸었던 길을 회상하며 마지막까지 좋은 풍경으로 피로감을 싹 씻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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